<산지기일기> 그날의 특별한 선물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의 작곡자 최용덕 님의 간증입니다



미국에서 머무는 두 주간 동안, 
펜실베니아, 메릴랜드, 델라웨어 세 주(州, state)와 뉴욕을 오가며
모두 여섯 교회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11월 9일 수요일엔 미국의 첫번째 주인 델라웨어의 볼티모어 <영원한교회>에서
저녁예배 때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그 교회의 구성원들 상당수는, 미국 군인들과 국제결혼하여
이미 오래 전에 미국에 건너가 정착한 한국인 부인들이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집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신 하나님>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고,
성도님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아멘으로 화답해 주셨습니다.

마침 그 교회에는 오래 전에 처음 개척을 하셔서 교회를 궤도에 올려놓으신 후
5-6년 전에 젊은 후배 교역자에게 교회를 맡기고 본인은 일본 선교를 위해
일본에 선교사로 가서 사시는, 예전 담임목사님께서 마침 들어와 계셨습니다.
원 담임목사님과 후임 목사님의 관계는 마치 부자지간처럼 친밀해 보여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후임이신 젊은 목사님이 부임하신 후에는 특별히 젊은 청년들이 많이 늘어서
교회가 한층 부흥되고, 또 활기가 넘친다고 성도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수요 집회를 마친 후 밤이 늦었기에 저는 교회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그 교회의 한 장로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인근 다른 주인 메릴랜드로 가야 했습니다.
장로님 부부께서 인터넷이 되는 아이패드를 빌려 주셔서
그날 <거룩한 부담>이라는 산지기일기 글을 쓰느라 잠자리에 좀 늦게 들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내외분께서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도 된다고 하셔서
마음 푹 놓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뒤늦은 시각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 선교사로 계시는 그 원 담임 최목사님께서 후임 목사님과 같이 저더러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고, 아침 일곱 시까지 교회로 오라신다는 것입니다.
..... 아이구.... 그러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야? 
다음날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지라 오전엔 좀 늦게까지 푹 쉴 수 있으면 좋은데...

그래도 교회 어르신의 말씀이니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몇 시간 겨우 눈 좀 붙이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장로님과 같이 교회로 갔습니다. 
넷이서 어느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최선교사님께서 어디 같이 바람이나 쏘이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바다 풍경이 멋진 기독교수양관이 한 시간쯤 거리에 있다시며 말입니다.
저는 그냥 숙소로 가서 쉬면 제일 좋겠는데, 젊은 고 목사님께서도
저를 그렇게 배려하기를 원하셨는데, 제일 어른이신 최선교사님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 한 대에 넷이서 타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안개가 유난히 심했습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커서인지, 안개 지역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 수양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심한 안개 때문에
저에게 구경시켜주고 싶어 하셨던 그 풍경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 풍경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서
남자 넷이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으며 산책을 좀 했습니다.






최선교사님께서 거기서 30분 정도 더 걸어가면 야생 사슴 무리를 볼 수 있다며
우리를 데리고 가려고 하셨지만, 결국 젊은 고 목사님께서 나셔셨습니다.
"목사님, 그냥 돌아가죠! 최간사님께 무리일 것 같은데..." 
아이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차를 타고서 다시 돌아 나오는 길, 시간이 지나면 안개가 걷힐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안개가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해가 뜨면 안개가 금방 걷힙니다" 하셨던 최선교사님 말씀이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자욱한 안개 속 길을 달리노라니 아직도 제법 남아 있는 가을단풍과 더불어
도로 주변 풍경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안개로 몇 십 미터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닷가 수양관에서도 그러했지만,
굽이굽이 안개 속 도로를 달릴 때 실은 내내 제가 작곡한 노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가 떠올랐습니다.
그 가사 속에 <차츰 차츰 안개는 걷히고>라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날 아침과 같은 상황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입으로 그 노랠을 조용히 흥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라는 곡은
<오버 톤>이라는 크리스천 외국 시인이 쓴 시(한글 번역)에다
제가 곡을 붙인 곡입니다.
원래 저는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나오는 타입이어서
다른 이의 시나 가사에 곡을 붙이는 것을 대단히 어려워합니다.
실제로 그런 곡은 거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시를 읽게 되었을 때 제 속에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 시의 상황이 당시 제가 처해 있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승승장구(!)하던 음악선교단 사역을 하루아침에 내려놓고 
깊은 산골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목소리는 되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언제 낫는다는 보장도 없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아파도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일세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스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할 길을 잘 아심일세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내 신앙 부여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하나님을 내가 믿음일세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서
너무 멀리 가물가물 어른거려도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 아니하리
만사를 주님께 내어 맡기리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이 노래의 가사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저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가사의 내용은, 다소 암울하고 어둡고 불확실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둠과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은 현실을 말합니다.
달려가야 하는 길은 굽이치고 또 굽이치며,
내가 세운 계획은 빗나가는 것 같고, 
붙들고 있던 희망마저 스러져가는 지경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당시 제 상황이 꼭 그러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분의 약속의 성취는 전혀 예측이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점점 어둠이 깊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감옥에서 나오기 전까지의 요셉의 생애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실타래가 풀릴 기미는 안 보이고, 오히려 더욱 꼬여만 갑니다.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두 달이면 회복되리라던 목소리는
몇 년이 지나도 아직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인생이 끝날 것 같습니다. (6년간을 벙어리로 지냈습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계셔도 외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침묵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단호히 외치는 것입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굳게 믿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서도 이 상황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을 굳게 신뢰하며 묵묵히 계속 이 길을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대 전제는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을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자녀요 백성을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며,
나름의 계획과 섭리를 가지시고 친히 그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절대로 당신의 계획을 성취하심에 실수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그분의 시간계획표에
우리 생애 전체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생애까지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내 소망과 바람대로 진행되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인격>을 신뢰하지 못하면
사실 우리의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분의 사랑과 능력과 인격을 의심치 않기에 우리는 
지금의 이 불확실성과 어두움과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의심치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어야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과 사랑과 인격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래서 우리 삶에 실제로 성취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허무하고 가련한 것입니까?

누군가 저에게 편지를 보내와서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운명이여 오라>라는 가사는 비기독교적인 표현이므로 고쳐야 한다 하셨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사를 고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운명이여, 오라!>라고 외칠 때의 그 <운명>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엄중함을 내포하고 있는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운명>이라는 세상적인 단어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숙명>이라고 여기는 것,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는 절대적인 상황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 운명이든 숙명이든 오너라! 내가 맞아 주겠다!
나는 절대로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만사를 주님께 내어 맡길 것이다!"

절대로 변경될 수 없는, 변화될 수 없는 것을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한다면,
그런 운명과 숙명아! 내게로 오라! 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것 따위가
순식간에 변화되고 변경되고 만다는 대선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리어 <운명이여 오라!>는 이 번역이 썩 마음에 듭니다.
이 구절을 노래할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게 됩니다. 

안개 속을 달리는데 내 입에서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노래가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조금씩 안개가 옅어지고 있었습니다. 
도로 주변 풍경이 좀 더 선명해 지고 있었습니다. 


"앗!!! 자, 잠깐만요! 목사님, 차 좀 세워 보세요!"
제가 갑자기 운전중이신 최목사님께 소리쳤습니다. 
차가 갑자기 멈추어 섰습니다. 
"아니, 왜요?" 최목사님과 다른 일행들이 놀라서 동시에 외쳤습니다.
제가 앞을 가리키며 "저기 저 앞에 차 좀 세워보세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막 걷히기 시작하는 안개 속으로 무슨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그 간판에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제가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전에 다녀온 기독교수양관으로 접어드는 입구에 세워진 간판이었습니다.
제가 차에서 부리나케 내려서 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에 이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영어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지만, 그 세 단어만큼은 제가 아는 단어였습니다. 
Jesus Never Fails!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 안개길을 오가는 내내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를 노래했는데
거기 이 문장이 적혀 있는 커다란 간판을 만나다니!
"예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선 결단코 실수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제 키보다 훨씬 더 큰 높이에 엄청난 넓이의 그 간판 앞에 서는데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여기서, 하필 그 때에 이 구절의 간판을 만나다니!
수양관으로 들어갈 때는 안개 속에서 그저 스쳐지나갔던 간판인데,
다시 그 앞으로 지나오면서 그것을 발견하다니!
아무리 기독교국가라는 미국 땅이지만, 이렇게 커다란 간판에다
이런 놀라운 구절을 적어 두다니! 

안 그래도 그 전날 저녁 집회 때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주 예수님>에 대해 애타는 마음으로 간증했던 저의 고백을 다들 들으셨기에
목사님 두 분과 장로님께서도 그 대형 간판 앞에서 탄성을 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최간사님께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당신들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것을 지나쳤는데, 
저의 눈에만 그것이 띄었다는 것입니다.

예, 그 간판이 제 눈에만 선명하게 띄었던 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영어에 까막눈인 제 눈에 그 구절이 띄었다니 더더욱 말입니다.
가기 싫었던 아침 나들이, 차라리 숙소에서 푹 쉬었으면 싶었던 그날 오전,
굳이 이른 아침에 불러내어 부담스런 아침식사에
원치 않는 먼거리 여행까지 몰아부치시는 최선교사님이 조금은 원망도 되었는데
그 모든 원망의 마음이 눈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마음이 몇 배로 커졌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저 사진을 좀 크게 확대해서 출력을 해둘까 봅니다.
미국 땅에서 만난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한 치 앞길이 내다보이지 않는 안개속에서
무서운 절망과 두려움이 나에게 엄습해올 때
마침내 안개가 걷히고 그 속에서 나를 맞아주었던
저 커다란 간판의 세 단어를 떠올리겠습니다.
그날 아침의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향한 선하신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